이 사주는 갑목(甲木) 일간이 신금(申金)이 사령(司令)하는 신월(申月)에 태어난 신약(身弱) 구조다. 세 기둥을 통틀어 오행 비율을 보면 토(土)가 33%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목(木)·화(火)·금(金)·수(水)는 각각 17%씩 균등하게 나뉜다. 일지(日支) 오화(午火)는 상관(傷官)으로 출력을 담당하고, 월간(月干) 임수(壬水)는 편인(偏印)으로 자원이 된다. 년주(年柱) 기축(己丑)의 토(土)는 정재(正財)와 편관(偏官) 구조의 재성(財星) 군락을 형성한다. 구조의 이름은 '편관격(偏官格)'이며, 용신(用神)은 수(水)와 목(木)이고, 금(金)·토(土)는 기신(忌神)이다. 이 차트의 핵심 긴장은 하나다. 갑목 일간은 절토(切土)하는 힘, 즉 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충동을 본성으로 삼지만, 정작 자신은 신약하여 그 재성을 온전히 감당할 뿌리가 빈약하다. 뿌리 없는 거목이 거대한 토양을 취하려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 이것이 이 감사(鑑査)가 생애 전반에 걸쳐 추적할 단 하나의 질문이다.
| 일간 | 甲 — 양목 |
| 강약 | 신약(身弱) |
| 격국 | 편관격 |
| 용신(用神) | 수(水) (인성) · 차용신 목(木) (비겁) |
| 대운 방향 | 역행, 2세 시작 |
갑목(甲木)은 양목(陽木)으로 곧게 자라 하늘을 향하는 대목(大木)의 상(象)이다. 굽히지 않는 의지와 선구적 추진력이 특질이나, 금(金)에 베이고 토(土)에 눌리면 뿌리가 흔들린다. 이 일간은 신월(申月) 출생으로 득령(得令)하지 못했고, 일지(日支) 오화(午火)의 상관(傷官)이 목의 기운을 설기(泄氣)하므로 득지(得地)도 이루지 못했다.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되려면 수(水)의 자양이 반드시 필요한 구조다. 십신(十神) 분포를 보면 정재(正財) 2, 편인(偏印) 1, 상관(傷官) 1, 편관(偏官) 1로 구성되어 있다. 비견(比肩)·겁재(劫財)가 전무한 것이 눈에 띈다 — 동지가 없는 일간이다. 상관(傷官)의 창의적 파괴력과 편재(偏財)적 도전 욕구가 뒤섞이되, 그것을 지탱할 자아의 기반이 얇다. 화려한 외부 확장이 내부 취약성과 영구적으로 경합하는 구조 — 이것이 이 일간의 근본 모순이다.
각 대운마다: 엔진이 계산한 대운의 구조, 공개 기록이 말하는 사건, 그리고 그 부합에 대한 정직한 판정.
대운 신미(辛未)는 천간 신금(辛金)이 정관(正官)이고, 지지 미토(未土)가 정재(正財)다. 제공된 지지 관계에 따르면 미(未)는 일지 오화(午火)와 합(合)하고, 년지 축토(丑土)와 충(沖)한다. 기신(忌神)인 금(金)·토(土) 운이 이중으로 작동하는 환경으로, 신약한 일간에게는 억압적 국면이다. 실제로 이 시기 나폴레옹은 10세에 브리엔 군사학교에 입학해 코르시카 억양과 빈곤으로 조롱과 고립을 경험했다. 정관(正官)의 규율과 억압, 정재(正財)의 결핍이라는 운의 구조가 사회적 소외와 빈곤한 환경이라는 전기적 사실과 일정 부분 호응한다. 다만 이 운이 단순한 고난기인지, 이후 도약의 준비기인지를 차트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부분적으로 설명된다.
대운 경오(庚午)는 천간 경금(庚金)이 편관(偏官)이고, 지지 오화(午火)가 상관(傷官)이다. 지지 관계에서 오오(午午) 자형(自刑)이 일지와 발생한다. 편관(偏官)은 도전과 투쟁의 아치타입이며, 상관(傷官)은 기존 권위에 맞서는 창의적 반항이다. 자형(自刑)은 내부의 긴장, 자기 강제적 단련을 시사한다. 이 시기 나폴레옹은 16세에 포병 소위로 임관했고, 같은 해 부친을 잃어 형제들의 생계를 부분적으로 떠안았다. 군사적 직분(편관의 영역)을 얻는 동시에 가족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이 얹혔으며, 1793년 툴롱 공방전에서 24세에 준장으로 발탁되는 결정적 도약은 이 운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편관(偏官)의 상징인 전장과 투쟁, 상관(傷官)의 창의적 포병 전술이 실제 생애 사건과 긴밀하게 대응한다.
대운 기사(己巳)는 천간 기토(己土)가 정재(正財)이고, 지지 사화(巳火)가 식신(食神)이다. 지지 관계에서 사신(巳申) 합(合)이 월지와 형성되고, 사축(巳丑) 반합(半合)이 년지와 이루어져 금(金) 기운이 강화된다. 금(金)은 이 명(命)의 기신(忌神)이다. 그럼에도 정재(正財) 기토(己土)는 신약한 갑목에게 지배 대상인 동시에 과부하의 원천이다. 실제로 이 시기는 나폴레옹의 황금기 초반이다: 26세에 조제핀과 결혼하고 이탈리아 원정을 승리로 이끌었으며(1796), 이집트 원정(1798)과 브뤼메르 쿠데타(1799)로 제1통령에 올랐다. 재성(財星)의 대규모 취득(영토·권력·명예)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국면이다. 다만 이집트 원정에서 함대를 잃고 군대를 고립시킨 전략적 과잉 확장도 이 운에 속하는데, 이는 기신(忌神) 금(金)이 강화되는 사신합(巳申合)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운 무진(戊辰)은 천간 무토(戊土)가 편재(偏財)이고, 지지 진토(辰土)도 편재(偏財)다. 편재는 확장과 지배, 제도화된 부(富)의 아치타입이다. 지지 관계에서 진신(辰申) 반합(半合)이 월지와 형성되어 수(水) 기운이 일부 보충되나, 전체 운의 기조는 토(土)의 과잉이다. 1804년 황제 즉위와 나폴레옹 법전 반포(35세), 1805년 아우스터리츠 대승(36세)은 이 운의 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편재(偏財) 운이 제국 건설이라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재성(財星) 취득으로 현현한 것은 차트와의 가장 강력한 대응이다. 그러나 1805년 트라팔가르의 패배와 1809년 조제핀과의 이혼(40세)도 이 운에 속한다. 신약한 갑목이 토(土)의 과잉 속에서 이미 금(金)의 손상을 병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균열이다.
대운 정묘(丁卯)는 천간 정화(丁火)가 상관(傷官)이고, 지지 묘목(卯木)이 겁재(劫財)다. 이 운은 제공된 지지 관계가 없으며, 목(木)과 화(火)가 동시에 들어온다. 목(木)은 용신(用神)의 보조이고 화(火)는 중립이므로, 이론상 신약한 일간에게 가장 유리한 운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전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1812년 러시아 원정(43세) — 60만 대군의 궤멸, 제국 붕괴의 시작. 1814년 연합군의 파리 점령과 첫 번째 퇴위 및 엘바 유배(45세). 1815년 백일천하와 워털루 패배, 세인트헬레나 유배(46세). 운의 오행 구조와 역사적 재앙 사이의 간극이 이 감사(鑑査)에서 가장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지점이다. 묘목(卯木)의 겁재(劫財)가 자원을 분산시키고 상관(傷官)이 통제력을 잃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나, 용신 목(木)이 들어오는 운에 제국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차트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만 설명된다.
대운 병인(丙寅)은 천간 병화(丙火)가 식신(食神)이고, 지지 인목(寅木)이 비견(比肩)이다. 지지 관계에서 인오(寅午) 반합(半合)이 일지와 이루어져 화(火)가 강화되고, 인신(寅申) 충(沖)이 월지와 발생한다. 인신충(寅申沖)은 월지의 편관(偏官) 기운을 흔드는 구조다. 이 운에서 나폴레옹에게 기록된 사건은 세인트헬레나 유배의 마지막 해들뿐이며, 51세(1821년)에 사망이 확인된다. 나이 계산상 사망은 이 대운의 시작(53세) 이전에 해당한다. 즉 이 대운은 그의 생애와 겹치지 않는다. 차트는 이에 대해 침묵하며, 침묵 자체가 정직한 답이다.
이 삶의 반복 패턴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신약한 갑목이 자신의 뿌리보다 훨씬 큰 토(土)를 취할 때마다 초기에는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 뒤이어 그 무게에 압도된다. 23~32세 기사(己巳) 운에 이탈리아 원정의 승리와 이집트의 고립이 동시에 발생했고, 33~42세 무진(戊辰) 운에 황제 즉위와 트라팔가르 패배가 함께 왔다. 재성(財星)을 취하는 속도와 규모는 일간의 역량을 항상 앞질렀다. 그러나 이 감사가 피해야 할 가장 큰 함정은 과잉 해석이다. 43~52세 정묘(丁卯) 운 — 용신이 들어오는 시기에 제국이 붕괴했다는 사실은 차트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러시아의 혹한, 워털루의 우연, 웰링턴의 판단 — 이것들은 어떤 명리(命理) 구조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차트는 이 삶이 어떤 긴장 위에 서 있었는지를 조명하지만, 역사 자체를 예언하지는 않는다.
나폴레옹은 51세에 사망했으며, 그 시점은 43~52세 대운 정묘(丁卯) 안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십 년은 세인트헬레나의 유폐와 죽음을 담고 있다. 겁재(劫財) 묘목(卯木)과 상관(傷官) 정화(丁火)가 공존하는 이 운의 국면에서, 그는 권좌도 군대도 없이 오직 구술과 회고록만을 무기로 자신의 전설을 직접 조각하는 일에 남은 힘을 쏟았다. 이후 대운은 논하지 않는다. 그가 실제로 경험한 마지막 국면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이 감사를 마친다.
| 1769 · 0 | 제노바가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할양한 지 15개월 만에, 코르시카 아작시오의 하급 귀족 가문에서 출생. 간발의 시점 차이로 프랑스인이 됨. |
| 1779 · 10 | 장학생으로 프랑스 본토 브리엔 군사학교 입학. 코르시카 억양과 가난으로 조롱받으며 고립되고 금욕적인 공부벌레가 됨. |
| 1785 · 16 | 포병 소위로 임관. 같은 해 부친 카를로가 위암으로 사망, 가세가 기울고 형제들의 생계를 일부 떠안음. |
| 1793 · 24 | 툴롱 공방전에서 영국군으로부터 항구를 탈환하는 포병 전술을 고안, 24세에 준장으로 승진. 그를 만든 결정적 도약. |
| 1795 · 26 | 파리 왕당파 반란을 '포도탄 일격'(시가지 대포 사격)으로 진압, 공화국 정부를 구하고 일약 사령관 반열에 오름. |
| 1796 · 27 |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결혼, 오합지졸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에 취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한 전격 승리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침. |
| 1798 · 29 | 이집트 원정 — 육전은 승리했으나 넬슨이 나일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전멸시켜 원정군이 해외에 고립됨. |
| 1799 · 30 | 고립된 군을 두고 귀국,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권력 장악 — 사실상 프랑스의 통치자인 제1통령에 오름. |
| 1804 · 35 | 노트르담에서 교황의 손에서 왕관을 직접 받아 스스로 프랑스 황제로 즉위. 가장 오래 남은 유산인 나폴레옹 법전 반포. |
| 1805 · 36 | 아우스터리츠 전투 대승 —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파한 그의 전술적 걸작. 같은 해 트라팔가르에서 넬슨에게 함대를 잃어 영국 침공은 좌절. |
| 1809 · 40 | 제국이 유럽 대륙을 지배하며 정점에 섬. 후사를 낳지 못한 조제핀과 고통스럽게 이혼. |
| 1812 · 43 | 약 60만 대군으로 러시아 침공. 초토화 작전과 혹한의 후퇴로 대군이 궤멸. 제국을 무너뜨린 재앙. |
| 1814 · 45 |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하고 원수들이 등을 돌리자 퇴위, 지중해 소도 엘바로 유배됨. |
| 1815 · 46 | 엘바를 탈출해 백일천하로 권좌를 되찾았으나 워털루에서 결정적으로 패배. 두 번째 퇴위 후 남대서양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됨. |
| 1821 · 51 | 6년 가까운 유폐 끝에 51세로 세인트헬레나에서 사망. 부친을 앗아간 것과 같은 위암이 거의 확실한 사인. |